나는 자신의 의미를 높이기 위한 싸움을 거부하기를 권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조율뿐이다. 펜듈럼의 손아귀 안에 있는 인간은 줄을 잡고 있을 때 느끼는 안정감과 지지받는 느낌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이 가짜 안전망 속에 무력하게 매달린 채 계속 균형을 잃음으로써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바치고 있다. 줄을 놓아버리고 나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그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중요성으로 새로운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다.
자신감의 도움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왜냐하면 중요성이 없으니 지키거나 정복해야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워하거나 근심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내 세계의 층은 잉여 포텐셜 때문에 왜곡되지 않는다. 나는 싸우기를 거부하고 흐름을 따라 움직여간다. 그러니 나에게는 갈고리를 걸 만한 데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허공에 붕 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는 원하기만 한다면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나는 싸울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고요히 가서 내 것을 거진다. 이것은 더 이상 불확실한 자신감이 아니라 침착하고 의식적인 '조울' 이다.
고요한 마음이 어디서 올까? 내적 중요성이 없으면 무엇을 누구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마음의 고요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면 그것을 사람들 앞에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그래서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그 중요성의 신화를 파괴하기 위해 균형력이 나설 것이고, 당신의 자신감을 시험하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또한 그로 하여금 중요성을 키우고 내세우려고 몸부림치게끔 부추긴다. 자신에게나 남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을 거부하고 부족한 느낌을 그저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들이라. 자신의 개인적 중요성을 위해 싸우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평생을 거기에 바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싸움을 거부하면 그 즉시 당신은 자신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불안은 무엇보다도 자기 비하와 관련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높이 평가받을 수 있을까? 내가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더 훌륭한 존재임을 믿으라고 부추길 것 같은가? 많은 심리학자들이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바로 이런 짓을 한다. 그것은 사실이긴 하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은 당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에 정확히 비례한다. 당신의 자신에 대한 견해를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자신의 높은 의미를 받아들이면 그 즉시 다른 사람들도 그에 동의할 것이다. 단지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자신을 확신시키는 것이 그리 쉬운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신도 직접 해 볼 수 있다. 당신이 자신을 비하하고 있다면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을 아무리 설득해도 결코 자신이 실제로 그처럼 훌륭하다고 확신하게 되지는 않는다. 훌륭한 품성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결점은 ? 가는 데마다 늘 있다.
그러니 나는 당신에게 자신의 훌륭한 품성을 믿고 자신을 높이 평가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결국 자신감을 얻든가 아니면 더욱 낙심할 것이다. 나는 자신의 의미를 높이기 위한 싸움을 거부하기를 권한다. (계속)
바딤 젤란드<리얼리티 트랜서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