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을 얻으려면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역설은 여기에 있다. 자신감을 얻으려면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미궁의 벽은 중요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은 불안을 없애고 자신감을 얻으려고 미궁 속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자신감은 가공의 것이다. 그것 또한 펜듈럼의 발명품으로 중요성을 노리는 함정, 가짜 신기루다. 자신감은 펜듈럼이 게임이다. 그 게임에서는 언제나 펜듈럼이 이긴다. 믿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의심의 자리도 있다. 자신감이 있는 곳에는 우유부단함과 망설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자신감은 성공에 대한 일종의 믿음이다. 모든 시나리오는 그것의 부정적 변형판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어서, 그 약간의 변형도 자신감의 벽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려 놓을 수 있다.

자신감이란 개념은 잉여 포텐셜과 의존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자신감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모든 것은 이런식이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난 절벽처럼 확고하고 결연하다. 나는 매사에 누구보다도 더 낫다. 아무도 날 막지 못한다. 나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해낸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고 용감하다. " 등등
자신감은 일시적인 잉여 포텐셜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그것의 실상이다. 아무리 그럴 듯하게 포장해놔도 자신감은 여전히 한갓 잉여 포넨셜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자신감은 반대 극성을 띠고 있는 불안이다. 양쪽의 포텐셜이 모두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첫 번째 포텐셜은 균형력에 의해 불가피하게 파괴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감을 쫓아다니는 것은 미래의 언젠가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환영 속의 행복을 좇는 것만큼이나 소용없는 짓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방금 또 하나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파괴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트랜서핑은 그 대신 또 하나의 대안 '조율' 을 제공한다. 조율이 무엇인지는 다음에서 알게 될 것이다.(계속)
바딤 젤란드<리얼리티 트랜서핑> 중에서~